최근 광복이냐 건국이냐 라는 말을 가지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 논쟁이 어떠하든 지난 60년의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변화를 겪었다.

우리는 반세기 넘는 사이에 서구 선진국들이 200~300년간 걸친 변화를 한꺼번에 경험했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화 사회로 쉴새없이 변화되면서 압축성장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먹고사는 생존에서 생활로, 생활에서 웰빙으로 삶의 방식이 변화되고 있다.

광복절을 맞이해서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60년간 국내 총생산(GDP)은 746배, 1953년 1인당 국민 소득이 67달러에 불과하던 것이 지금은 약 300배가 늘어난 2만 달러를 넘어서 세계 13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영국 신경제재단(NEF)이 세계 178개국을 대상으로 행복지수(HPI)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102위에 그쳤다. 2000년 이후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 세계인의 행복지수에 대한 조사결과를 보면 한국은 조사국 가운데 중간에도 들지 못하고 있다.

한국사회학회가 정부수립 60주년을 맞이해 ‘한국인의 삶에 대한 생각’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한국인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74.7%이지만 과거에 비해 줄어들고 있고 돈이 행복의 첫 번째 조건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돈을 행복의 첫 번째 조건으로 추구하다보니 돈이란 면에서는 잘사는 나라가 됐다. 그러나 행복지수나 행복감은 오히려 떨어지는 패러독스 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가치관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이 물질적인 것을 강조하는 가치관을 후진국형으로 규정하고 있다. 물질이 행복이 되지 못하는 것은 물질은 항상 상대적이고 그 욕망이 끊임이 없기 때문이다.

M. 메테를링크의 동화극 파랑새에서 치르치르와 미치르 남매는 행복을 상징하는 파랑새는 마음속에 살고 있고, 자기 집 처마 밑에 있음을 발견하고 있다. 즉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다.

행복지수는 주관적인 지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관이 바뀌면 지수도 변화되게 된다. 우리에게는 행복지수가 낮은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돈이 행복이 아닌 데 돈을 행복으로 알고 돈을 쫓아가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파랑새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살고 있으니 행복지수가 높아질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2002년 영국의 심리학자 로스웰(Rothwell)과 인생 상담사 코언(Cohen)이 만들어 발표한 행복지수에 의하면 가난한 나라의 상징인 방글라데시의 행복지수가 전 세계에서 1위라고 발표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와 네팔, 인도 등의 가난한 나라에서 생활하다가 한국에 잠시 들른 한국인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한국에는 여유가 없다는 말을 한다. 무엇인가에 항상 쫓기고, 정해진 틀 속에서 생활하고, 경쟁이라는 화두가 모든 부분을 지배하기 때문에 자기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이들 나라들이 한국보다는 더 행복한 것 같다고 이야기 한다. 행복한 나라의 국민들은 분명 삶에 여유가 있다.

그 여유가 경제적으로 풍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방글라데시와 네팔, 인도 등은 가난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우리처럼 야근을 밥 먹듯 하지 않는다. 일보다 가족이 중요하고, 자신들이 믿는 신앙을 중요시 하면서 함께 살아간다.

즉 가족이란 공동체가 살아 있고 종교라는 공동체가 이를 이어주면서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우리는 매우 잘 사는 나라가 됐다.

그러나 그 잘 사는 것을 행복한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유럽연합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덴마크의 국민소득은 우리의 배가 된다. 그러면서 인구의 97%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한다. 그들은 소득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고, 그 세금으로 노후를 보내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

덴마크 인들이 행복한 것은 우리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돈을 함께 쓰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환갑을 맞은 우리나라가 행복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파랑새를 보아야 할 것이다. 분명 우리는 잘 사는 나라이다.

잘 살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행복지수는 높아질 것이다. 그 잘 사는 것을 함께 나누는 사회가 될 때 우리의 행복지수는 경제력만큼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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