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청주시 수동 인력시장을 가다

   
 
  ▲ ▶오전 4시30분 새벽 동이 트자 구직자들이 청주시인력관리센터에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전 5시30분 최근 극심한 경기불황을 증명하듯 청주시인력센터에 있는 일일취업현황 안내판이 깨끗하다. ▶오전 6시 구인업체를 기다리던 구직자들이 인력센터에서 제공하는 아침밥을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오전 6시30분 한 구인업체 차량이 인력센터 앞 도로에 도착하자 구직자들이 우르르 달려가고 있다.  
 

잇따른 노조 총파업 영향 공사현장 ‘올스톱’

인력센터 취업현황 전무… 근로자 ‘죽을 맛’

값싼 외국인 인건비·경기불황·장마 ‘3중고’

 

화물연대에 이어 건설기계노조까지 총파업에 동참하면서 굴착기, 덤프트럭, 타워크레인이 모두 공사현장에서 멈췄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침체로 일감도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건설현장까지 ‘올 스톱’을 보이면서 ‘하루 품삯’구직자들은 더 이상 설 곳이 없다. 건설노조가 강경 투쟁을 선언한 17일 오전 4시부터 8시까지 4시간 동안 충북 청주시 상당구 수동 청주시인력관리센터를 찾아 그들의 애절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이날 오전 4시30분께 청주시인력관리센터 앞. 어둠이 걷히면서 하나 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속에서도 어느새 150명 가량이 모였다.

이들은 모두 공사현장에서 ‘하루 품삯’이라도 받기 위해 새벽잠을 포기하고 먼길을 걸어온 사람들이다.

새벽바람을 맞은 탓일까. 이들의 얼굴이 그리 밝지 만은 않다. 걱정이 드리워져 있었다.

“요즘, 일감이 없어서 죽을 맛이야. 노조들은 파업한다고 난리라서 공사현장이 ‘올 스톱’한다고 하지, 경기는 바닥이지, 처자식 다 굶기게 생겼어.”

60대 가량으로 보이는 한 구직자가 작심한 듯 욕설을 섞어가며 한참을 퍼부었다.

연신 담배를 무는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옆에 있던 또 다른 구직자가 거든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일주일에 나흘 이상은 일 나갔어. 그런데 지금은 이틀 일하기도 버거워, 거기에다 품삯도 떨어졌어, 큰 기대 안 하고 매일 나오기는 하지만 답답한 마음 금할 길이 없어”하며 혀를 끌끌 찼다.

그는 이어 하루 평균 8만원 가량 하던 품삯이 어느 새 6만∼7만원까지 떨어졌다며 한숨을 지었다.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데다 정국 상황까지 급속도로 얼어붙으면서 경기활성화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건설현장’이 고사 위기를 맞고 있다.

여기에 민주노총 총파업이라는 국가적 위기상황까지 초래되면서 그야말로 ‘인력시장의 구직자’들은 더 이상 물어날 곳이 없는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됐다.

지난해만 해도 인력시장은 호황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먹고 살만 했다고 구직자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았다. 하지만 올 들어 사정은 180도로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력시장은 찾는 구직자들은 줄어들고 있지 않지만 이들을 찾는 구인업체는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청주인력관리센터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일일취업현황 안내판에 구인업체의 희망사항을 빼곡이 적어 놓아 구직자들이 나름 골라 움직였다”며 “(하지만)올 들어서는 구직자를 찾는 구인업체가 현저히 줄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도로에 쪼그리고 앉아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 담배만 연신 피는 사람들, 심지어 일감을 포기하고 인근 가게에서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 사람들, 인력센터에서 6시부터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먹고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까지,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이날 오전 6시30분께. 차량 한 대가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품삯과 일감에 대해 흥정을 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섰다. 흥정이 깨진 것이다.

30분이 지난 오전 7시.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더니 오전 8시에 이르자 인력센터는 평온한 아침을 찾았다.

이들의 고통은 하나 둘이 아니다. 정치는 관심도 없고 특히 노ㆍ사ㆍ정 문제는 더욱 관심조차 없다. 이들에게는 오직 먹고사는 것만이 관심사고 그저 일하는 것이 즐거운 사람들이다. 최근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저렴한 인건비까지 이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인력시장으로 가세하는 대학생들도 큰 부담이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오는 장마도 걱정이다.

그저 일하는 게 좋아, 먹고살기 위해 묵묵히 일하는 공사현장 근로자들이 편안하게 발 뻗고 자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인력시장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기자의 발걸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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