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10일 앞두고 여의도 1번지 국회로 향하려는 선량(選良)들의 현수막이 거리에 현란하게 나붙어 있다. 거리에서는 후보들의 말 잔치가 풍성한 것을 보면 정치의 계절임을 실감케 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각 정당 후보 옷 색깔에서 어김없이 당색(黨色)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선거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후보들의 입는 옷까지 당색으로 나타내 표심으로 연결시키려는 각 정당의 전략이 흥미롭다. 후보들이 입는 옷에서조차 당색을 표현해 당 대 당(黨 對 黨)으로서의 결합과 대립을 유권자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함이요,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한 전략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우리조상들은 자신들의 정파(계파)의 색깔은 어떻게 표현했을까. 조선시대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은 행색이나 당색만 봐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각 정당 색 표현 전략

노론과 소론이 얼마나 피비린내 나게 싸웠던지 부인들의 옷매무새와 머리까지도 달랐다고 하니 대단한 당색이 아닐 수 없다. 길거리에서 여인네의 옷매무시나 머리만 봐도 그 부인이 노론인지, 소론에 속한 집 마님인지를 알았던 것이 우리 조상들이었다. 저고리의 깃과 섶이 둥굴고 치맛주름이 굵고 주름수가 적으면 노론이고, 깃과 섶이 뾰족하고 모났으며 치맛주름이 잘고 많으면 소론이 틀림없었다고 했다. 또 머리 쪽이 느슨해 뒤통수가 가려져 있으면 노론 부인이요, 바싹 추켜 뒤통수가 노출되게끔 쪽을 올려 찌었으면 소론 부인이다.

사색당파에 따라 경치를 구경하는 동작도 판이하게 달랐다고 한다. 문헌 ‘이순록(二旬錄)’에는 ‘산천을 돌아보며 활개치고 탄성을 지르며 구경하는 것은 남인(南人)이고 산수를 자세히 보지 않고 냇물에 발을 담그고 노는 것은 틀림없이 소론이었으며 몸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품위를 지키며 장중하게 오가면 노론이라고 적혀있다. 사색당파는 혈육까지도 멀리했을 정도다. 남인인 장현광(張顯光)의 손녀 장씨는 그의 아들이 서인(西人)에 붙자, 그 즉시로 아들집을 떠나 같은 남인인 사위 집에 옮겨가 살다 그곳에서 죽었다고 한다.’ 파당이란 정치에 대한 주견의 차이에서 일어났는데 적과는 학문·교혼·복색·교제, 거주지역 등 그 모든 것을 같이하지 않으려 했던 것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는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한나라당의 분열로 인해 친박근혜계가 탄생했다. 이는 친이명박계가 공천과정에서 박근혜계 상당수를 제거하는 바람에 생겨났다. 이로 인해 친박연대와 무소속 돌풍이 불면서 당색이 과거에 비해 엷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보수 층의 분열과 지역주의가 결합된 특징 등으로 친박연대와 무소속 출마자들이 당색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데다 무소속 출마자 특성상 정치세력을 규합하기 힘든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이번 총선이 흥미로운 것은 김영삼·김대중·김종필씨의 영향력이 퇴조한 상태에서 치러진다는 점도 당색감소의 또하나의 이유다.

우리나라 정치는 3김씨의 계파정치를 빼놓고 논할 수 없다. YS·DJ는 대통령을 역임했고 JP는 총리를 세 번 역임하면서 충청권에 자민련바람까지 일으켰지만 이번 선거에서 이들의 정치력은 ‘종이 호랑이’에 불과했다.

YS·DJ가 각각 자신의 아들 현철·홍업씨 공천에 대한 영향력 행사하려 했지만 먹혀들지 않았고 낙천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지만 무시당한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총선에서 당색이 적은 것은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공천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양 당은 공천 후폭풍으로 낙천자들이 대거 친박연대나 무속으로 출마하면서 당대표와 계파의 리더십을 축소시키면서 ‘당색 감퇴(보수층의 분열과 충청권지역주의)’라는 방아쇠를 당겼다. 

함량미달 후보 골라내야

어쨌든 유권자들은 당색이 있든 없든 후보들이 선거 때 쏟아내는 공약 중 30%만 실천했더라면 국민들의 삶의 질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졌을 것이라는 점에서 후보선택의 압축강도를 높였으면 좋을 듯 싶다.

유권자들이 거짓말을 일삼고 공약(空約)을 남발하는 후보를 뽑아놓고 뒤늦게 탄식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고 공약이행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후보를 선택하는 길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지금부터 맹목적으로 소속정당과 계파를 추종하고 국민을 얕잡아 보는 함량미달 후보를 골라내는 일을 시작할 것을 주문한다. 그렇게 한다면 의외로 당색·계파를 떠나 인물위주의 후보 선택이 훨씬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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