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보다 따뜻한 날씨라고는 하지만 겨울바다의 매서운 바람은 뼛속까지 파고든다.  

이런 일만 아니면 겨울 바다의 낭만을 한껏 만끽할 수 있으련만….

안타깝다.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인간으로서 자연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직원들이 모아온 헌옷을 가지고 해변가의 돌들을 닦아 보지만 생각만큼 깨끗해 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위 틈이나 사람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은 아직도 시꺼먼 원유 덩어리가 그대로 덕지덕지 붙어 있다.

얼마를 닦았을까 시장기도 돌고 춥기도해 잠시 쉬려고 허리를 펴니 해변가는 물론 해안선을 따라 길고 긴 행렬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 온다.

“그래 이것이 한국인의 정신이다. 우리 민족정신이 살아 움직이는 참 모습이다.”

나도 모르게 가슴에서 울려 퍼지는 이 같은 함성을 소리 없이 바다를 향해 외쳤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개인의 일을 뒤로 하고 똘똘뭉치는 한국인의 민족정신을 보며 누가 감히 모래알과 같은 민족이라 하였는가.

몇몇 외국인들의 단편적인 이야기에 동조하듯이 한국인의 민족정신이 이렇고 저렇고 하며 감히 말 할 수 있는 자가 누구란 말인가.

단군이래 최고의 위기라고 하는 IMF 때를 보아도 우리 국민들은 굳게 뭉쳤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아이는 돌 반지를 가지고 나왔고 경로당을 지키던 할머니는 애지중지 아끼던 비녀며 반지를 들고 나와서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줬다.

금모으기를 위한 긴 줄을 본 외국 기자들까지 감동해 제대로 말문을 못 열었다고 하지 않던가.

그뿐인가 월드컵 경기 때에는 온 국민이 붉은 옷을 입고 13번째 선수인 대한민국 응원단원은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얼마 전 러시아에서 농산물 수입을 위해 바이어 한 명이 농협을 찾아왔었다.

관련자들과 함께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나는 한국을 처음 찾은 바이어에게 한국의 첫인상을 물어 보았다.

그분은 서슴없이 한국을 한마디로 ‘강소국’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놀란 2가지를 차분하게 말했다.

첫째는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쉬지 않고 일하는 국민들의 부지런한 모습이고 둘째는 가는 곳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친절함이라고 했다. 그리고 몇 가지 덧붙인 말 중에 한국의 ‘빨리 빨리 문화’가 오늘의 한국을 이룩한 것 같다며 러시아가 배워야 할 것 중에 하나라고 말했다.

우리는 ‘빨리 빨리 문화’에 대해 그 동안 얼마나 많은 비판을 쏟아 냈는가.

하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그 것이 장점으로 보였다니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웠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사람이다 보니 느긋함에 물들어 있었을 텐데 짧은 시간이지만 나름대로 한국을 제대로 보고 분석한 것 같다. 하기야 이번 원유유출 사건만 해도 몇몇 사람들의 실수로 저지른 재앙이지만 아마 다른 나라에서 발생했다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 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위기가 오면 뭉치는 한민족의 ‘위기탈출’ 능력과 ‘빨리 빨리 문화’는 재앙 속에서 헐떡이는 자연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회복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좋은 제도나 관습을 갖고도 좋은 줄 모르고 스스로 폄하하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문제가 발생하면 개선 할 점이 무엇인가를 찾아 개선하고 조정하면 되는데 무조건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며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이제 버려야 한다.

얼마 전 나를 치료한 치과 의사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이가 아프다고 무조건 이를 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주신 이보다 더 좋은 이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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