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나가 본 분들은 삼성의 저력을 실감했을 것이다. 전 세계 최고 기업들의 광고 전광판들 사이에 삼성과 LG 광고판이 떡하니 서 있는 걸 볼 수 있다.

밖에 나가면 삼성은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칭송을 받는다. 일부 국가에서는 삼성의 인지도가 한국의 인지도 보다 앞서는 곳도 많다. 즉 한국은 몰라도 삼성을 아는 외국인이 많다는 얘기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국내에 오면 삼성의 이미지는 영 달라진다.

지금 국내에서는 ‘삼성 두들겨 패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지식인이 아닌 것 같은 분위기다.

요즘 한국 사회는 대선을 앞두고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을 상대로 ‘1인 전쟁’을 벌이고 있다.

국민들이 ‘김의 전쟁’에 응원을 보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폭로가 유례없이 구체적이라는 점이 여느 시시한 양심선언들과는 다른 파괴력을 갖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최대 재벌인 삼성의 부도덕성과 비리를 폭로했다. 승산 없는 싸움, 고단한 싸움에 나선 그의 신산(辛酸)이 읽혀졌다. 본인도 “남은 인생을 쓸쓸히 살다가 뒷골목에서 황폐한 최후를 맞을 것이라는 경고가 현실일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제 특검에서 이 거북한 사건에 대해 마침내 칼 을 빼들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진실이 가려질 것이다.

하지만 김 변호사를 비난하는 여론도 있다. 배신자라는 것이다. 고액연봉을 받고 호강하던 사람이 이제 옛 주인을 물어뜯는다는 비난이다. 그는 삼성에서 수년간 100억여 원의 급여를 받으면서 일하던 사람이다.

재벌의 조직적 부패와 불의를 참을 수 없어 폭로했다면 왜 회사에 몸담고 있었을 당시에는 폭로하지 않았을까. 혹 변호사 개업 후 옛 직장인 삼성에서 법무일거리를 안 챙겨줘 섭섭해서일까. 그도 아니면 ‘떡값 받았다’는 판·검사들이 자신의 변호나 수임사건을 냉대라도 해서일까. 나아가 그가 퇴사 후 삼성으로부터 받은 거액, 그러다가 끊긴 지원금, 폭로 전 삼성 측에 보낸 편지 등이 화제다.

그러나 부조리를 고발하는 사람에게 도덕적 결함을 덮어씌우려는 건 지겨운 레퍼터리다.

위터게이트 사건을 제보한 ‘딥 쓰롯’이 돈을 원했다고 해서 리차드 닉슨이 결백해지지는 않듯, 내부고발자의 흠결이 고발 자체를 퇴색시킬 순 없는 것이니까.

또 이 사건을 두고 호남사람들은 내심 걱정하는 분위기다. 올해 49세인 그가 광주 태생으로 광주일고 출신이라는 것이다. 이제 호남사람이 삼성서 임원되기는 틀렸다는 탄식, 젊은이들 이력서도 넣기 어렵게 됐다는 걱정들이다. ‘악마의 주술’이라는 지역감정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대목이다.

내부 고발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구성원 간의 신뢰와 약속의 토대를 허물어 버린다. 성직자와 의사, 변호사 등 특수직업인이 직무상 취득한 비밀을 공개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직무윤리로 보다 엄정한 비밀 준수 의무가 부과된다. 설령 그 비밀이 악일지라도 성직자가 고해성사의 내용을, 의사나 변호사가 고객의 비밀을 선별해서 공개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하다.

이 점에 변협은 의뢰인에 해당하는 삼성의 비밀을 공개한 것이 변호사 윤리에 위배된다며 그를 징계한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시대나 내부고발자는 고독하고. 힘든 싸움을 해야 한다. 내부 고발자에 대해 동기의 순수성만 따질 경우 ‘정말 본질’을 잃어버릴지 모른다. 뭔가 자신의 이해와 직접 관련되지 않고는 내부 고발에 나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진공 상태에서 살지 않는 이상. 사람의 행위에 100% 순도는 없는 것이다.

1990년 감사원의 이문옥 감사관은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내역 감사가 외압으로 중단된 사실을 폭로했지만 공무상 기밀누설죄로 파면됐다. 당대엔 위태로워 보이고 어리석어 보이는 이 같은 고발들은 사회를 변화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내부고발자들은 역사발전의 희생자들이다. 고발자들의 용기를 격려하면서도 출신지와 개인성향을 들추는 모순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비온 뒤 땅이 더 굳어지듯 이번 기회에 삼성이 거듭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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