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건국 이래 2인자 급 감투를 많이 쓴 사람은 누구일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다. 대통령 여·야 후보 2차례, 총리, 집권당 총재, 제1야당 총재, 중앙선관위원장, 감사원장, 대법관. JP나 고건 전 총리도 입법, 사법, 행정, 선관위라는 4부를 종횡무진하진 못했다. 그는 대통령을 빼곤 대한민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인물이다

그런 그가 1997년 15대 대선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당시 DJ는 71세 때 ‘준비된 대통령’ 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출마, 당선됐다. 도전 4수(修)만에 대망의 권좌에 오르게 된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의 패인은 이인제씨가 경선에 불복하고 탈당, 대선 출마로 인한 분열이었다. 패인으로 거짓으로 판명된 ‘병풍사건’을 들 수 있으나 결국 정몽준씨와 김종필씨가 반대편에 서는 바람에 패했다.

그런 그가 지난 7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12월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지난 정초에 “내 처지에 대선을 놓고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는 것은 오만한 생각이다. 현실정치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었다. 그러다가 최근 이명박후보 불안론이 불거지자, 불출마 생각에 변함이 없으나 정권교체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고심 중이라 연막을 쳤다.

그에겐 출마가 ‘큰 결단’일지 몰라도 국민에게 배신과 부도덕의 극치로 비친다. 자신을 두 번이나 대선 후보로 뽑아 준 당에  비수를 꽂을 수 있는가. 그는 좌파 정권의 종식 운운하지만 그의 출마는 보수 세력을 갈라놓음으로써 좌파 정권을 도울 수 있다. 그는 출마의 명분으로 대북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궤변일 뿐이다. 그는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 조차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다. 국민에 대한 모욕, 선진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코미디, 무임승차, 새치기 등 갖은 욕은 다 먹고 있다. 이렇다 할 명분 없이 대선 판에 뛰어든 것이 문제인 것이다. 노욕이 지나쳐 노추(老醜)란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차라리 그가 이번에 “억울해서 꼭 한번 대통령 해 봐야겠다. 아무리 이명박·정동영을 봐도 내가 더 똑똑하고 나은 것 같아서 국민의 심판을 다시 받고 싶다”고 고백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물론 그는 개인적으로 억울할 게 많다고 본다. 97년 대선 패배는 본인 책임이 컸다.

이인제의 배반도 그렇지만 두 자녀의 병역면제는 국민에게 커다란 실망을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2년 대선 때는 김대업이라는 병역브로커가 ‘의인’으로 등장해 거짓말투성이 대국민 폭로극을 펼쳤다. 그러나 그의 입장에서는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일 수 있다. 그런 정치공작이 없었다면 벌써 대통령이 됐을 그다.

하지만 대선이 개인 한풀이의 장이 돼서는 안된다. 그가 만일 대선에 출마하고 싶었다면 한나라다 경선에 참여했어야 했다. 그리고 이명박 후보가 낙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출마의 변을 했지만 이는 마치 남이 안 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 같다. 기회주의자로 몰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생명처럼 지켜온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이런 식의 정치 재개가 원칙에 맞는다고 주장하는 것도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권력욕이 아닌가. 지금 상태로는 그가 당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선 4수’ 성공한 DJ 사례와도 다르다, DJ는 자신을 ‘선생님’으로 부르는 핵심 지지기반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는 지역적으로나 계층적으로 뚜렷한 기반이 없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이인제 민주당 후보도 3수째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국민이 지켜본 것처럼 그것은 경선을 통해 당원들의 자유로운 선택이었다. 그가 어떤 말로 포장하든 모든 것은 노욕과 비겁한 기회주의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인제의 경선 불복을 보고 난 후 경선에 나온 후보는 본선에 나올 수 없도록 한 것처럼 경선 당시의 당원도 경선에 불복해서 본선에 나올 수 없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 전 총재가 출마할 명분이 없는 게 문제다.

아무리 정치가 생물이라고 하지만, 이회창씨의 출마는 정당민주주의 근간을 허물었다. 지금 이씨 주변에는 ‘차떼기’와 세풍(稅風)의 주역들과 정치 구물들이 속속 몰려 들고 있다. “현대의 비극은 정캇라고 일갈한 나폴레옹의 말이 실감이 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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