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원정대 히말라야 등정기

   

세계 최고의 오지 파키스탄 차라쿠사 히말라야의 미답봉을 오르고 봉우리의 이름을 직지봉으로 명명하기로 하며 출발했던 직지원정대는 히말라야 산신의 거부(몬순과 지구 온난화의 영향)로 봉우리 정상을 겨우 150m정도 남겨놓고 내년을 기약하며 눈물의 후퇴를 했다.

7월15일 히말라야 등반사상 처음으로 봉우리의 이름을 우리의 자랑스러운 세계문화유산 직지의 이름을 따 ‘직지봉’이라 명명하기 위해 출발했던 직지원정대. 파키스탄 정부는 직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우리의 입장을 따라주겠다고 흔쾌히 약속했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따라 대장정이 시작됐다. 도로 한쪽은 가파른 능선이고 다른 쪽은 거대한 빙하가 입을 쫙 벌리고 있는 인더스강 상류이다.

어느 대원은 이를 보고 “차가 밑으로 구르면 물에 닿기 전에 배고파 죽을 것 같다”고 농담했지만 생(生)과 사(死)가 바로 우리 옆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계곡 쪽으로 아슬아슬 걸려있는 트레일러, 금방이라도 밀려 내려올 듯한 돌무더기, 정면으로 마주쳐 달려오는 차등 수많은 위험요소와 얼굴을 마주한 채 6시간의 대장정 끝에 드디어 파키스탄 최대의 등반기착지 스카루드에 도착했다.

우리는 식량과 텐트 및 필요한 장비들을 준비하기위해 서둘러 시내로 나갔다. 시간을 벌기위해 내일 바로 출발하려니 시간이 바쁘다. 

19일 대원이 나누어 탄 다섯 대의 지프가 드넓은 강줄기와 바위, 모래로만 이루어진 사막산의 침봉군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달린다.

비포장 도로를 지나 후세 마을(해발 3170m)에 도착했다. 우리는 야영준비를 하고 등반기간 중 먹을 김치와 깍두기를 담갔다. 어둠이 내리고 옆 대원의 숨소리가 거칠게 들려오는 고요한 밤하늘엔 빼곡한 별들이 빛의 향연을 펼쳤다. 손에 잡힐 듯 가까워 진 별을 따서 임을 향해 날려 보낸다.

20일 대원들 모두 몸 상태가 좋다. 포터들에게 짐이 배분됐다. 대원들은 서둘러 후세 초등학교로 향했다. 학교는 165㎡ 남짓한 곳에 두개의 건물이 지어져 있으며 120명 정도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우리의 교육환경과는 비교할 수도 없지만 배움을 갈구하여 이방인의 출입에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어린이 학생들이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학생들에게 직지영인본과 티셔츠 50벌을 선물하니 무척 좋아했다. 저 멀리 K7을 중심으로 한 차라쿠사산군의 일부가 우리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다. 그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없는 우리는 그저 반갑게 인사하며 첫 숙박지인 사이초에 도착했다.

어둑해질 무렵 가셔브롬 등반을 하고 내려오는 스위스 원정대의 세르파를 만났는데 가셔브롬2봉 등반에 나선 16개팀이 모두 실패했다고 전했다. 특히 독일원정대원 2명이 추락사하고, 일본팀원 1명은 완전 실신 상태란다. 머리가 주뼛 섰다.

강행군한 끝에 23일 베이스캠프(해발 4360m)에 도달했다. 가슴이 탁 트이도록 넓은 평원이 맘에 들었다. 서둘러 텐트를 치고 짐을 정리하며 ABC(전진캠프)로 올라갈 짐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김홍 대원과 민준영 대원은 ABC정찰 겸 짐 수송을 위해 떠나고 나머지 대원들은 뒷정리를 하며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데 갑자기 사방이 컴컴해지더니 굵은 빗방울이 텐트를 뒤흔들었다. 깜짝 놀라 밖에 나가 정찰나간 대원들이 오나 살펴보니 보이지 않는다. 항상 날씨에 민감 할 수밖에 없는 이곳! 놀리기라도 하듯 바로 햇빛이 비친다. ABC에는 우박이 떨어졌단다.

저녁식사 후 모두 모여 회의를 했다. 대원들을  짐수송조인 A조와 공격조인 B조로 나누어 편성하고 등반방식은 알파인스타일로 대원 스스로 짐을 이동해 정상으로 향하기로 했다. 날씨가 예상외로 따뜻해 서둘러야 될 듯싶다.

24일 오전 8시에 B조인 민준영, 김홍, 배명석 대원이 먼저 출발하고, A조인 김권래, 김학분, 황병찬 대원이 뒤를 따랐다. 오후 1시께 교신을 하니 B조는 ABC를 지나 빙하의 세락지대를 운행하는데 날씨는 일단 괜찮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빙하 상태가 좋지 않아 오후 7시가 돼서야 B조는 빙하의 중간에 텐트를 쳤고 A조는 짐을 일부 수송하고 ABC로 내려와 식사준비를 했다.

저녁식사 후 밤하늘을 바라보니 환상적이다. 그토록 두텁게 감쌌던 먹구름이 물러나고 머리를 하늘위로 꼿꼿이 치켜 올린 주위의 침봉군과 별들이 잔치를 벌이니 달은 멀리 자취를 감추었다. K6, K7, 카푸라, 네이져피크 등 모든 봉우리들이 활짝 웃고 있다. 어떻게 이 장면을 담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을까?

전날의 신비를 뒤로하고 25일 하늘에는 또다시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점심을 먹고 다음날 캠프1에 올라갈 수 있는지 상황판단을 하고 있는데 김홍 대원과 김학분 대원이 하산한다는 무전이 왔다.

캠프1지점 바로 아래에서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하산을 한 김홍 대원은 하루가 다르게 세락이 무너지고 있으며, 낙석이 심하고 루트 개척이 너무 힘든 최악의 등반상황이라 말한다. 그는 대원들이 직접 짐을 수송하는지라 체력이 많이 소모됐고, ABC의 식량을 축내는 것보다 베이스로 돌아갔다가 캠프가 건설되면 그때 다시 올라가는 것이 좋겠다고 제의했다.

빙하가 녹으면서 크레바스의 형태도 변하고 있다는 김홍 대원의 말에 눈물을 머금고 다시 베이스캠프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 이상으로 빙질의 상태와 자연여건이 좋지 않아 등반이 어렵게 돼가고 대원들의 고갈된 체력을 생각하니 저녁식사 때 음식이 넘어가질 않았다.

다음날 주위의 산정들은 계속 구름옷을 뒤집어쓰고 우리의 시선조차 거부했다. 캠프1에서 혼자 떨어져서 있던 황병찬 대원이 무사히 합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연스레 다시 공격조와 지원조가 나누어졌다.

내일 공격조는 캠프2를 설치해야하는데 캠프1 위쪽으로 크레바스가 너무 발달해 넘어서기 어려운 모양이다. 공격조가 캠프2를 공략하는 사이에 베이스에서는 데포지(짐을 일시 보관하는 곳) 텐트로 필요 물량을 수송키로 했다.

정상을 향한 총공세의 고삐를 바짝 거머잡았다. 저녁 무렵 텐트위의 바위벽에서 떨어진 거대한 낙석은 순식간에 베이스캠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날마다 반복되는 낙석과 빙하의 붕괴 소리는 우리를 자연에 대한 두려움으로 내몰았다. 날씨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리면서 더워질까 봐 두려워하는 우리! 그간의 히말라야 경험 중 두려움이 가장 많이 밀려오는 등반이었다. 

27일에도 날씨가 잔뜩 흐렸다. 대원들이 캠프위에 있는데 날씨라도 도움을 주면 얼마나 좋을까? 김홍 대원과 김학분 대원이 베이스를 출발했다. 밑의 빙하지대 상태를 공격조에게 설명하고 “안전하고 신속하게 등반을 마치고 내려오라”는 말도 전하라 하고 빙하의 상태를 살피러 K6쪽 빙하로 정찰을 갔다.

확연이 변한 빙하의 모습을 보고 정상 공격도 못해보고 하산을 명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지원조가 데포지 텐트에 올랐다는 무전소리에 뒤이어 공격조는 5천600m지점에 캠프2를 설치했다고 전해왔다.

28일 출발 시간이 지연되었다. 새벽에 김권래 등반대장의 상태가 좋지 않아 오전 7시 넘어서 출발한단다. 늦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수 없어 캠프 뒤의 봉우리에 올랐다. 생각보다 고전을 하고 있다는 무전이다.

바위벽에서 3시간을 소비하고 큰 커니스(눈처마)를 넘는데 또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무전이다. 커니스를 뚫고 나가니 거대한 크레바스가 가로막고 있단다. 시간과 체력의 한계로 더 이상의 등반이 힘들어 캠프2로 결국 하산했다.

그들의 심정이야 오죽하랴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나의 속도 마찬가지로 숯덩이가 되어갔다. 대원들에게 무전이 오질 않는다. 이는 무엇보다도 속을 가장 많이 태우는 일이다. 오만가지 잡생각을 하고 있는데 오후 8시30분께 무사히 캠프로 내려왔다는 무전이 들려왔다.

29일 하루를 쉬고 30일 정상을 향해 어프로치 하는 날이다. 오늘 단 한번의 기회가 남았다. 새벽 2시 식사를 마치고 출발하려 한다는 무전을 받았다. 보름달이 구름 사이를 뚫고 다니며 밝음과 어둠을 함께 거닌다.

무명봉인 저 봉우리가 ‘직지봉’이 되기를 간절히 정상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했다. 달님이 수줍어 살포시 미소로 답하는 듯하다. 대원들의 상태가 괜찮다하니 마음이 편했다. 오전 7시 엊그제 철수했던 눈 처마 지점이란다. 무전기를 손에 들고 대원들의 목소리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 무전기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오전 11시 더 이상은 올라가기 어렵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6058m지점인데 눈이 녹아 자꾸 밀려 내려온단다. 주책없는 눈물은 계속 흘러내렸다. 2차 시도도 할 수 없을 만큼 날씨 상황이 나쁘다고 한다.

설원에서의 낮 온도가 40℃를 육박하니 어찌하랴. 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다다를 수 없는 미지의 땅 히말라야에서 나의 존재가 보잘 것 없음과 애타는 소망을 받아주지 않는 히말라야 신에 대한 눈물 앞에 이제 모두들 제자리로 돌아오는 길만 남겨 놓고 있었다.

포터들보다 월등하게 많은 짐을 지고 내려오는 대원들의 검게 탄 얼굴과 부르튼 입술을 대하니 또다시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얼마나 고생했는지 듣지 않고도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대원들과 얼싸 안고 서로를 위로하며 우리가 대자연 앞에서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를 깨달았다.

내년에 다시 우리들의 기상을 되새기며 이곳에서 못다 한 꿈을 이루리라. 기필코 직지봉 정상에 우리의 직지 깃발을 꽂으리라 마음먹으며 하루를 접었다. 밤하늘의 달과 별이 여느 때와 같이 함께 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