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대’가 문을 닫아야만 되나--한규량<충주대학교 노인보건복지학과 교수>
‘동경대’가 문을 닫아야만 되나--한규량<충주대학교 노인보건복지학과 교수>
  • 충청매일
  • 승인 2006.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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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복지지도사(이하 경로당복지사)란 충북도의 ‘2006 여성희망일터 찾아주기 사업’의 일환으로 전개됐던 ‘여성인턴사업’ 중 한 분야이다.

충북도 여성정책관실에서는 2005년 말부터 여성일자리 창출사업으로 고심하던 중 필자가 제안한 경로당복지사 안을 적극 받아들여 취업매니저, 방과후 보조교사(에듀케어와 인성교사) 안과 함께 여성일자리 인턴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을 추진했던 담당공무원은 이를 위해 여성부에 교육비 지원 예산 출원을 신청, 확정해 놓고 있던 터라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우선 충북도와 여성부 그리고 교육청과 협약을 하도록 하고 파견된 인턴의 인건비 지급을 위한 지자체의 예산 확보를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확보된 예산으로 막상 사업을 추진하려 하니 각 분야별 인턴 교육생을 선발해 교육시키고 현장에 파견까지 일이 산재해 있었다.

그러나 YWCA 여성인력개발센터, 실업극복협의회와의 민·관협력으로 일사분란하게 이뤄졌고, 경로당복지사교육은 필자가 맡아 교육생 전원 경로당에 파견됐다.

경로당복지사의 직업이 창출되게 된 것은 탄생경로부터 부연설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2004년 충북도 여성발전센터(당시 여성회관)에서는 고령화사회에 걸맞는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래서 실버시터(silver sitter)반이 신설됐고, 필자가 프로그램을 짜고 교육하는데 협력했다.

2004년과 2005년에 1·2기생이 배출되고, 이들을 합친 심화과정을 거쳐 인재를 확보해 놓은 상태에서 2006년 여성인턴제와 만나게 된 것이다.

과거 전문직을 지냈고 또한 고학력의 커리어를 지닌 고급인력이 사장되는 게 안타까워 그녀들의 잠재능력을 개발하고 발휘하도록 장을 펴 준 충북도 여성정책관실의 혁신적인 마인드와 추진력에 정책을 제안했던 사람으로서 감격의 한해를 보낸 셈이다.

더구나 28명의 경로당복지사들은 경로당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제2의 직업, 제2의 인생을 살게 됐고, 부수적인 효과로 60여 곳의 1천200여명 경로당 할머니들 삶의 질을 높이는데 일조를 했기 때문이다.

경로당복지사는 경로당에 파견돼 경로당 노인들에게 노인복지 프로그램을 직접 제공함으로써 노인의 여가 문화를 지도, 평생학습을 유도해 그들의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는 일을 한다.

구체적으로 경로당을 이용하는 노년기 노인에게 노화를 예방하고 잔존능력을 유지할수 있도록 돕는 인지적·정의적·신체적 모든 활동을 프로그램을 통해 유도한다.

덕분에 요양상태로 가지 않고 마지막까지 지역사회 내에서 생을 안전하게 마감하도록 하는데 있다.

경로당에 출근하는 경로당복지사들의 프로그램 효과로 경로당에 출근하는 할머니들의 삶이 변하게 됐다.

“아이구 죽겠다. 빨리 죽어야지~”라는 말을 경로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내뱉던 할머니들이었는데 이젠 살아가야 할 존재이유를 되찾기 시작했다.

동네에 들어온 약장수들 따라 할머니들이 가출(?)을 하기도 해 경로당복지사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약장수와의 싸움에서도 승리했다.

‘화투’, ‘낮잠’, ‘험담’의 대명사인 경로당이 ‘공부’, ‘꿈’, ‘칭찬’의 경로당으로 변신했다. 당신들 스스로도 “난 치매도 없어졌어! 못걷던 걸음두 걸어! 까막눈 신세두 면했어!” 하며 경로당복지사 예찬론자가 됐다.

동경대교수인 경로당복지사 덕분에 경로당이 이젠 동경대(동네 경로당 대학의 줄임말)로 바뀌어 학구열에 불타오르는 등 경로당 혁신이 일어난 이 시점에 문을 닫게 됐다.

예산과 공을 들인 인적자원이 한해사업으로 끝나고 원점으로 돌아가게 돼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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