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주산지인 충북 보은(報恩)색시는 여름에 비가 많이 내려도 눈물을 흘리고, 너무 가물어도 눈물을 흘린다’는 말이 있다.

대추는 장마가 길어지면 많이 열리지 않는 데다 열어도 잘 여물지 않는 탓이다. 날씨가 좋아 대추가 잘 익어야 하는데 비가 많이 내리니 가을에 좋은 값에 대추를 팔 수 없기 때문이다. 대추 흉년으로 좋은 값을 받을 수 없으니 시집가지 못한 채 또 한해를 넘겨야 하기에 보은 색시 숨어서 운다고 했다.

거꾸로 가뭄이 길면 대추는 풍작이지만 가격이 폭락, 역시 시집 못 가 울었다. 허구한 날 눈물 흘리는 색시를 ‘대추 골 보은 색시’라는 말로 빗대곤 했다.

젊은이들이 모두 떠난 농촌에 시집갈 여성들이 없길 망정이지, 올해 배추 값 폭락으로 ‘낭성 배추 골 색시’는 보은 대추 골 색시처럼 여지없이 배추 값 폭락으로 올해도 시집 못 가 울 뻔했다. 

예나 지금이나 농사에는 첨단장비가 동원되고 인공강우까지 만드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역시 날씨에 민감하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배추농사는 날씨에 더욱 민감하다. 잦은 비와 가뭄의 영향으로 고추 값은 비싼데 반해 배추 값은 폭락했다. 농민들이 큰 손해를 봤다. 김장을 담그는 가정에서는 고추 값이 비싼 데도 예년보다 오히려 양념값이 덜 들었다. 현재 시장에서 배추는 올 가을 계속된 가뭄 등 이상기후에도 작황이 좋아 포기당 산지 도매가는 150~200원, 소매가는 500원 선이다.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거래된 5t 차량의 배추의 경우 지난해 382만원의 절반 수준인 184만5천원에 시세가 형성된 것만 보더라도 농민들의 어려움을 익히 알 수 있다.

배추 주산지인 충북 청원군 낭성에는 500여 농가가 배추를 재배했으나 가격폭락으로 출하 못한 배추가 밭에서 꽁꽁 얼어붙어 못쓰게 돼 갈아엎어야 할 상황이다. 단양군 대강면 배추재배농민들도 강원지역의 수해로 배추 값 인상을 잔뜩 기대했지만 과잉생산으로 생산원가도 못 건졌다. 충남 아산시 배방면 배추재배농민들은 지난 8월 포기 당 250~300원에 중간상인들과 계약했으나 가격 폭락으로 상인들이 출하를 포기하는 바람에 결국 잔금조차 받지 못하고 큰 손해를 봤다. 농민들은 생산비 일부라도 건지기 위해 직접 배추를 판매하고 절임 배추를 만들어 팔기도 했지만 워낙 가격이 낮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무·배추 가격이 폭락하자 급기야 농림부가 농한 자금 등 117억원을 투입, 전국 2천400ha에서 무·배추를 매입, 산지에서 폐기 처분해 가격안정을 노렸지만 역부족이었다.

농민들만 손해 본 것이 아니었다. 배추가격이 폭락하는 바람에 밭떼기로 계약한 중간 상인들도 계약금 등 손해를 봤다. 상인들은 박지원의 소설 주제가 된 묵사동 사는 허생이 안성에서 밤·대추·감을 매점하고 제주도 말총까지 매점으로 떼돈을 벌었던 것이 무색할 지경이다.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먹는 배추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고 용도도 다양하다. 김치는 한국 땅에서 나는 배추에 소금과 고추·젓갈 등 양념만 넣어 버무리면 세계적인 맛이 된다. 그늘에 말린 시래기를 된장에 넣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배추 뿌리는 술안주로 제격이고 술 먹은 다음날 먹는 배추 국은 숙취 해소에 좋다. 이런 배추가 밭에 그대로 밭에서 썩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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