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론이나 당략이 양분화돼 격화되면 제3의 목소리, 곧 민심에서 정치의 줄기를 찾는 것이 오랜 역사가 많은 희생을 치르고 얻어낸 값진 진리다.

선조 때 명상 이준경이 숨을 돌리는 베개 밑에서 임금에게 써 올린 유차(劉箚)도 바로 그 것이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혹 몸에, 허물이 없고 하는 일에 법칙에 어김이 없어도 단 한마디 말이 자기네 뜻과 합당치 않으면 배척을 하고 용납하지 않으며 큰 목소리로 당파를 만들어 발치 앞을 보지 못하니 나라가 걱정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부디 전하께서는 말없는 민심을 꿰뚫어 보심으로서 이 치닫는 양단을 가운데로 수렴하옵소서. 이 명상이 죽고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동인·남인의 당쟁이 생겨 국난을 자초하자 선조께서는 이 유차에 소홀했음을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누가 국민으로부터 신임을 더 많이 받느냐에 따라 집권 여부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공산당을 세운 모택동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말했지만 민주국가에서 권력을 좌우하는 표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민심에서 나온다. 민심을 잃으면 표도 잃고 권력도 잃을 뿐만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그래서 권력은 민심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의석이 17대 국회에서 152석이 139석으로 줄고 4차례 재·보선에서 40대 0으로 전패한 것은 성난 민심을 추스르지 못한 결과다.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반성하고 책임지는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유죄 판결을 받은 인사들이 장관 자리를 보란 듯 꿰차는 비정상적인 인사도 있었다.

참여정부의 ‘공신에 대한 보은인사’, ‘제 식구 챙기기’라는 비판을 들었을망정 이들의 범법 전력은 장관 기용에 결격사유가 되기는 보다 ‘훈장’이 됐다.

대통령이 “임기 동안 반드시 부동산 정책을 잡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부동산 값은 폭등해 서민들을 절망케 했다.

‘전시작전권 환수는 이르다’는 여론이 팽배한데도 ‘자주’란 미명 아래 밀어붙였다.

국민들이 불안해 하는 북 핵 실험 이후에도 대통령은 국민들을 안심시키지 못했다.

이를 반영하듯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최근 조사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정운영 지지도는 사상 최악인 11.0%로 추락했다. 열린우리당 지지도도 동반 추락해 13.6%를 기록했다. 노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적 평가는 79.9%로 나타났다.

민주정치란 바로 민심에 뿌리를 둬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6일 한나라당에 ‘정치협상회의’를 제의했다. 이병완 비서실장은  더 나가 거국중립내각도 논의하자고 했다. 임기를 1년 남겨 놓은 이 시점에 구성되는 내각은 사실상 임기 말까지 가는 선거관리내각이다.

그런데 도지사 선거에 낙마한 사람을 선거관리를 책임지는 행자부장관에 임명한 게 나흘 전이다. 오기 인사를 한 지 사흘 만에 거국내각 논의는 적절치 않다.

이제 노 대통령은 정치에서 손을 떼고 국정에만 전념해야 한다. 국정협의가 아닌 정치협상은 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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