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말맛’으로 불러야한다.”

소리꾼 ‘장사익’은 평소 그렇게 강조한다.

‘김원중’은 “모든 노래는 냄새가 있다”고 했다. ‘도종환’은 옛 고전을 빌어, “본래 시란 음악의 마음이요. 소리는 음악의 몸이다…” 라고 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시인 ‘고은’도 노랫말을 지었다.

언젠가 방송에서 시인은 ‘가을편지’와 ‘세노야’는 한 지인의 부탁으로 운율을 염두에 두고 즉석에서 급조한 노래 같은 시라고 했다. 전후 황량한 서울 명동거리, 작은 주점 ‘은성’은 당대 내로라 하는 예술인들의 문화사랑방이었다. 바람이 부는 어느 날 저녁,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김진섭’과 명동백작으로 일컬어졌던 시인 ‘박인환’, 그리고 당대의 최고 가수인 ‘나애심’이 거기서 우연이 조우했다. 창 밖을 바라보던 시인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하더니 무언가 급히 휴지에 적어 내려갔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김진섭’은 즉석에서 그 낙서 같은 시에 곡을 붙여 응얼거렸다.

그리고 옆에 있던 ‘나애심’은 거기에 우수에 찬 그의 목소리를 실어 노래했다. 가요의 샹송으로 불리어지는 명작 ‘세월이 가면’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심봉섭’시 ‘신귀복’작곡의 가곡 ‘얼굴’도 비슷한 사연이 있었다. 1960년대 어느날 생물교사인 ‘심봉섭’은 실연의 아픔으로 몹시 지쳐있었다. 빈 종이만 있으면 시인처럼 무언가 쓰고 지우길 여러 번. 그의 아픈 편린 같은 쪽지가 마침 그의 곁에 있던 음악교사 ‘신귀복’눈에 띄였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얼굴…”

작곡가 ‘신귀복’은 그 메모를 보자마자 읽는 속도와 거의 동시에 곡조가 돼 그의 입을 통해 노래가 나왔다한다. 명곡 ‘얼굴’이 완성된 것이다.

강원도 어느 산골 모임에서 만난 노 작곡가 ‘신귀복’은 상기된 표정으로 직접 그 사연을 내게 들려주었다.

“바람이 오면 오는 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도종환’ 시 ‘바람이 오면’은 이렇게 시작된다. 시인이 쓴 시에 젊은 작곡가 ‘김대훈’이 곡을 붙여 우리지역의 노래모임 ‘민들레의 노러가 부른 ‘시곡’ 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절창가요 시곡 중 이 노래만한 곡이 없다며 늘 너스레를 떤다. 거기에는 이 노래를 처음 제작할 당시에 함께 참여했던 각별함도 있었겠지만 모든 인연을 떠나 음악 완성도만을 놓고 냉정히 비교해봐도 그 어느 노래와도 당당히 견줄만하다고 나는 여기고 있다.

“그리움이 오면 오는 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그렇듯 살면서 우리는 바람 같은 그리움의 인연을 수없이 겪고 지우며 살아간다.

“아픔도 오겠지요/ 머물러 살겠지요 / 살다가 가겠지요/ 세월도 그렇게 왔다간 갈 거 에요/ 가도록 그냥 두세요.”

시곡 ‘바람이 오면’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바람이 유난히 많은 이 늦가을, 시인은 마치 이 짧은 선시 같은 운율을 통해 선승과도 같은 구도의 인과를 설파하고 있는 듯하다.

문득 법화경 말씀이 떠오른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본래부터 스스로 고요하고 청정하다. 우리가 이와 같이 닦고 닦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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