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산홍엽이다.

사람들은 올 단풍 빛이 곱지 않다고들 호들갑을 떨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눈부시도록 찬란한 가을빛이요

천지간이 입체적으로 붉게 살아 움직이는 경이로운 만산홍엽이다.

피반령 산 기운은 내 작은 정원에까지 조락의 갈색 물감으로 물들이며 내려앉았다.
이내 모두가 산이 되어 흐른다

지금 우리 집 뜰 안은 목백일홍 붉은 이파리와 선연한 핏빛 담쟁이 넝쿨 잎이 압권이다
문밖, 작은 저수지엔 쉼 없이 몸을 뒤채는 부들과 은빛 갈대의 여린 손짓.

그리고  올해도 변함없이 빨간 오촉 전구 같은 열매를 달고 반짝반짝 빛을 내며 서있는 몇 그루 수호신 같은 담장 밖의 늙은 감나무.

오후햇살이 좋은 오늘, 나는 모처럼 뒷산 오솔길로 나섰다.
늦은 시월의 산은 지금 가장 평화스런 표정을 띠며 입체적으로 살아 흐른다.

돌아오는 길 가시덤불 속으로 찔레꽃 붉은 열매가 점점이 눈에 띈다.
마치 성탄제의 트리 장식처럼 작고 앙증맞은 붉은 열매만을 남기고 빈 덤불로 서있는 찔래.
그 모습이 너무 고와 길게 가지 채 꺾어 한 아름 안고 내려왔다.

유약을 바르지 않은 오래된 황토색 옹기를 찾아내 그들을 담아내니 훌륭한 가을 소품이 돼 거실 한 켠을 지킨다. 투박한 토종 옹기와 붉은 산수유 같은 열매의 산 찔래가 묘한 조화를 이루며 말없이 깊어진 가을을 전해준다.

나는 이 소박한 옹기가 좋다.

몇 년 전 어느 ‘옹기야생화전’에 갔다가 매료돼 하나 둘 모아 놓은 것이 이제는 작은 옹기전을 차릴 만큼 식구가 늘었다. 우리는 틈나는 대로 조우를 하며 대화를 나눈다.

어쩔 땐 내가 먼저 말을 건넬 때도 있지만 대개는 늘 적적한 모습으로서있는 그들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짧게는 수 십 년 길게는 몇 백 년, 한국의 양지바른 고향 장독대를 지켰던 그들은 한 많은 이 땅 어머니들의 오랜 삶의 동반자였으며 신성한 안택 제단의 증인이었으므로 유난히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그래서 가만히 이렇게 곁에 서 있으면 말을 건네지 않아도 그들은 두런두런 이 땅 일상의 역사를 풀어놓는 것이다. 담고 있는 많은 사연만큼이나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배불뚝이 고추장 독. 간장 독에 울퉁불퉁 좌우 대칭이 안 맞는 새우젓단지.

병약한 어느 산골 촌부를 살려냈을 오래된 질그릇 약탕기와 맑은 술을 빚어냈던 한껏 멋을 부린 날렵한 소주단지에 오동통 살이 붙은 누이의 물동이와 푸른 이끼 긴 검은 떡시루까지그 속엔 토종 한국의 멋과 맛이 다 들어있다.

또 유려하고 소박한 이 땅의 산세와 고단한 역사도 다 들어 있다.
우리 마음도 그때는 옹기를 닮아 너나 할 것 없이 순후했다.

언젠가부터 옹기가 제 빛을 잃고 화사한 빛으로 반짝거리고 플라스틱 같은 단단한 다른 용기로 대체되면서 우리들 심성도 그렇게 겉멋이 들고 딱딱해지고 사나와졌다.

악다구니만 남은 듯 한 이 무례하고 피폐된 현대를 사는 우리가 옹기의 유려하고 소박한 자태를 그리워하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이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것으로는 절대 저 부드럽고 유려한 흙의 기운을 이길 수 없다.
그것이 수 천년 동안 이 땅을 지켜온 저 옹기의 위대한 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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