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하늘이 높고 햇살이 길다. 들판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산들은 불타는 듯 하다. 넉넉함을 채운 풍요는 포만감 때문에 한바탕 쉬어가고자 한다. 축제가 자리잡기에 안성맞춤인 계절이다. 여기에 젊음까지 보태졌기에 금상첨화다. 이번 주 우리 대학축제는 그렇게 축포를 쏘아 올렸다.

충청 프라이드! 그건 2006 충청대학 월강페스티벌의 슬로건이다. 교정 가득히 젊음이 요동치는 모습을 오랜만에 이모저모 둘러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음의 소중함은 내 자신에게 또 다른 작은 축제이기도 했다. 손만 잡고 자도 아기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과거를 되돌아 볼 수 있는 훌륭한 타임머신이었다.

그냥 즐김인 줄 알았다.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고래 잡으러 떠나는 길인 줄 알았다. 좀 지나치면 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이 다반사였던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즐김을 바탕으로 하되 교육의 결과를 진지하게 표현했고, 봉사를 통해 값진 소통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배운 것을 지역주민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모습은 박수를 받고도 남았다. 어른을 공경하고 섬기고자 하는 열정은 훈훈함 그 자체였다.

무대에 서기만 하면 흥이 나서 그냥 무대에서 죽고 싶다는 전야제 사회자의 첫 말이 폐부에 꽂혔다. 저마다 타고난 재주와 영특함을 생전에 발견하고 산다는 것은 인생에서 큰 축복이다. 학생들에게 그 길을 가르쳐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강의실에 들어서고 있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그렇게 인도했을까를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앞을 가린다.

야외에 꾸민 전시회장을 둘러보았다. 학생들이 한 작품을 걸기까지 어떻게 자신과의 싸움을 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입학 당시만 해도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이렇게 완성도 높은 작품을 걸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한 학생의 볼이 예뻐 보일 수밖에 없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와는 다소 거리가 멀었었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나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 확인하면서 느끼는 만족감은 기쁨으로 승화되고도 남을 법했다. 9개 학부 26학과가 저마다 뽐내는 열기는 가을낙엽을 태우기에 충분했다.

배움을 사회에 환원하는 봉사프로그램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이들을 데려다가 동화의 세계에 빠트려 놓기도 하고, 독거노인들을 초청해 치아와 건강을 체크해 드리는 세대초월공감은 충청 프라이드의 백미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유학생들이 손수 그린 초청 포스터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하였고, 민화전시장을 보면서 평생교육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변한다는 그 자체만이 불변이라고 설파한 헤라클레이토스가 살아있다면 우리 대학의 이런 축제의 변신을 무죄라 선고할 것이다. 우리 대학 축제의 변신은 진화였다. 즐김만이 아니라 배움과 섬김의 꽃을 충청 프라이드라는 리본으로 묶은 큰 잔치였다. 학생들에게 성취감과 자긍심을 심어줌으로써 어떤 세상과도 소통할 수 있는 인재를 기르고자 하는 것, 그것이 충청 프라이드의 속내이리라.

충청 프라이드는 오늘 무심천 주변 정화운동을 끝으로 그 막을 내린다. 성공리에 끝날 것임을 확신하면서, 더욱 진화된 축제를 내년 가을 이맘때쯤 이 교정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