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협회설립자의 숭고한 정신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부와 명예를 거머쥔 성공한 기업인들이 충북협회를 놓고 난리법석을 떨어가며 회장직에 연연하고 있다.

충북협회는 고향을 떠난 인사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모임이다. 그런데 왜, 충북협회라 불러 도민들에게 혼란을 주는가. 설립자들은 충북의 인구가 적고 도세가 약해 지역의 인사들을 참여시켜 지역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명칭을 충북협회라 칭한 것이다.

그 결과 충북협회의 신년회와 전기총회 때에는 충북의 단체장과 국회의원·경제인·시민단체·언론사·직능단체대표들이 참석해왔다.

충북협회의 역할을 결정하는 정관 3조에는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며 충청북도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문화 돼 있다. 정관 4조는 3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충청북도의 정칟문화·경제·산업발전을 위한 건의, 충북과 서울의 가교역할, 장학사업,  부동산임대업, 기타 본회의 목적달성에 필요한 사항 등으로 구성돼 있다.

또 본회의 목적을 찬성하는 충북출신인사와 충북을 연고로 하는 인사들로 조직하도록 돼 있다.

충북협회는 지방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며 친목을 도모하라는 것이지 지역발전을 외면하고 친목모임으로 운영하란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충북협회는 1946년 6월 서울 창경궁에서 열린 충북관계재경인사모임에서 협회 설립의 필요성을 논의한 뒤 1948년 8월 임의단체로 충북협회를 설립, 내무부에 등록했다.

충북협회는 2년 후 충북공무원 ‘호텔’개관(현 충북협회건물), 1950년 6월22일 충북협회를 사단법인체로 내무부장관허가, 53년 12월7일 법인설립등기, 1958년에는 6·25 전쟁으로 소실된 회관재건추진위원회를 발족과 함께 서울에서 426만원, 청주에서 102만원을 기금을 거뒀다.

충북협회는 1959년 9월27일 1천642만8천660원을 들여 3층규모의 철근콘크리트(연건평 135평)건물을 준공했다.

지금까지 열거한 것이 충북협회의 운영목적과 탄생배경이다. 중요한 것은 설립당시부터 설립자들은 지방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1950년 초 공무원호텔을 개관 운영’했음을 알 수 있다.

정관의 4조2항 서울과 지방의 소개 및 연락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중앙의 정보를 지역에 알리고 사람을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공무원의 서울출장시 묵을 호텔을 마련해 운영할 정도로 충북협회설립자들은 충북의 발전에 혼신의 노력을 다 해온 것이다. 그러나 충북협회는 지금 충북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오늘의 충북협회장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전쟁을 겪는 어려운 시기에도 고향발전을 위한 일념으로 사재를 털어 만들어 놓은 충북협회건물의 임대수익을 자신들의 친목회를 운영하는 경비로 탕진을 하고 있으며, 연간 700만원이라는 부끄러운 장학사업은 물론, 설립의 목적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임원을 맡아‘충북에서 웬 간섭이냐’고 반박하고 있다.

21년의 장기집권으로 사조직화 된 병들고 부패한 충북협회는 충북도민과 뜻있는 출향인들의 개혁의 목소리를 불순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

또 부정선거를 앞세워 부회장을 회장으로 당선시켜 충북협회의 사조직화를 위해 추태를 보여주고 있다. 충북협회는 설립취지의 숭고한 뜻을 망각하고 도민을 기만하는 충북협회를 하루 빨리 정상화 시켜 충북발전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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