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은 산길 들길로만 오지 않는다.

오늘은 성큼 내 방송 스튜디오에도 찾아와 곱게 물들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시인 ‘고은’이 쓰고 ‘김민기’가 만들어 부른 이 노래는 이제 가을의 전령이 된지 오래다.

“나뭇잎 떨어져 길 위에 구르네/ 바람이 불어와 갈 길을 잃었나…”

신중현 사단의 ‘장현’은 그 목소리에서부터 서걱서걱 나뭇잎소리가 난다.

“가을 잎 찬바람에 흩어져 날리면/ 캠퍼스 잔디위에 또 다시 황금물결…”

아! 김정호…

포유동물이 가진 목소리 중 가장 슬픈 목소리를 가졌다는 그가 아니던가.

오늘 나는 오래되고 익숙한 가을 노래들만 모아 70년 다운타운표 가을 포크로 한 시간 방송을 짰다.

전문음악채널의 제작은 나름의 구성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노래라도 적절한 배치와 음악과 연계된 언어의 수사가 없으면 금새 모래알처럼 겉돌고 낯모른 곳을 배회하듯 낯설다.

오늘 ‘김민기’에서 ‘조동진’으로,

‘김정호’에서 ‘양희은’으로 가는 가을 길목엔 금새 내 나이 또래 길동무들이 찾아와 동행했다.

그리고 여지없이 방송도중에 문자 메시지나 전화가 도착하는데, 내용은 대체로 ‘청춘을 돌려다오’같은 추억표 회상조에서 ‘꼭 녹음 해달라’는 청탁형까지 줄을 잇는다.

가끔 이렇게 감성의 결이 맞아떨어져 금새 반응이 오는 날은 저절로 애드립도 살고 음악적 감성지수도 높아진다.

이런 날은 방송을 하면서도 내내 즐겁다. 적당한 음악 골라 말 붙혀 떠들고 하는 것이 그나마 내가 갖고 있는 작은 재주라면,이렇게 그들의 고단한 현실 속의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게 할 수 있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던가.

몇 몇 내 친구들도 방송을 들으며 수시로 전화를 한다.

오늘은 ‘김민기’에서 딱 걸렸다.

영화‘정사’에 사운드 트랙으로 실린 읊조리는 듯한 김민기의 ‘가을 편지’는 오늘 분위기에 참 잘 어울렸다.

기타하나에 실린 그의 노래는 최근에 녹음한 버전인데 노래는 이미 음률적 현상을 떠나 박인환의 시구처럼 가을 속으로 들어갔다.

초등학교 동창 녀석의 상기된 전화목소리가 곧 나를 찾았다.

“들으며 울컥했다. 꼭 배워야겠다. 이번 주 내로 녹음해 놔라…”

나는 이런 친구들의 엄포 소리가 반갑다.

엊그제는 초등학교 동창회에 다녀왔다.  이제 막 50고개를 넘는 악동들이다. 생의 좌표를 놓고 보면 분명 이제 기울어지는 나이인데도누구하나 제 나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모두가 아직 젊고 로맨티스트며 멋쟁이로 산다한다.

섹소폰을 배워야겠다며 당장 선생을 찾아내라는 친구에, 헬스를 시작했으니 곧 몸 짱 되어 나타날 거라는 너스레에,마음만 앞선 채 음정 박자 무시하며 최신 노래만 고집하는 귀여운 친구엡

‘봄 동학, 가을 갑사’라고 했던가?

이번 주말에는 몇몇 악동들과 어울려 갑사 단풍놀이라도 다녀와야겠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