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와 표어가 난무하던 시절이 있었다. 전란이 끝난 후 거리를 메웠던 ‘재건합시다’에서 군사독재정권시절의 ‘반공 방첩’과 ‘총화 단결’을 거쳐 새마을운동시대의 ‘근면 자조 자립’까지….

그때는 한자식 표기가 주를 이뤘고 ‘잘살아보세’ ‘하면 된다’식의 순수 우리말 표기가 한동안 이어지다가 다시 온 국민을 체육공화국으로 진입시켰던 ‘체력은 국력’ 시대를 거쳐 최근에는 영어식 표기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뿐이랴 다소 과장된 슬로건도 여전히 유효하다. 과거에는 툭하면 ‘동양최대의 무엇’이었는데….

요즘은 너 나 할 것 없이 ‘세계 속의 무엇’이고 ‘한국제일’이다.

지금 충청북도는 경제특별도의 이미지를 살린 ‘Buy 충북’이란 표현을 주로 쓴다. 지방자치 실시 이후 언어의 인플레가 심해졌다. 그리고 행정기관에서의 외래어사용은 이제 그 도를 넘고 있다.

최근엔 자제하고 조심스러워야 할 공직사회에서 오히려 한층 더 외래식 표기를 부추기는 듯한 인상이다.

지금 충청북도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을 찾아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선 수년간 충청북도 시책을 강조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바이오토피아’와 ‘IT BT산업’, 그리고 이제는 공공연히 우리말이 되 버린 듯한 ‘인프라’와 ‘아젠다’, ‘그린투어’에 ‘비엔날레’.
최근 충북도가 슬로건을 공모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도의 입장에서 표현하자면,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는 역동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충청북도를 표현할 브랜드 슬로건 10개의 예시안을 놓고 ‘이 중 3개를 고르시오. 하며 도민들을 대상으로 선호도 설문조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열 개 모두는 영어식표기이거나 영어단어. 문장으로 돼있다. 지금까지 ‘Yes 충북’, ‘Clean충북’, ‘e-충북’이 가장 큰 지지도를 보였다한다.

나는 며칠 전 사실 이 뉴스를 읽으면서 우울했다. 툭하면 슬로건과 구호 표어를 양산하는 지방자치단체의 태도도 못 마땅하거니와 굳이 영어잔치를 벌이며 상징 표어를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였다.

도의 표현대로 꼭 브랜드 슬로건은 만들려면 그저 ‘신나는 충북’ ‘얼쑤 충북’ ‘맑고 푸른 충북’같은 우리말을 만들어 널리 쓰고 외국으로 나갈 때는 간단한 해설을 덧붙이거나, 누가 잘 물어보지도 않겠지만 혹여 질문을 하면 그때그때 설명 해주면 될 일이다. 그것을 꼭 ‘충청북도’라는 우리 말 지명 앞에 문법에도 안 맞는 영어식 표기로 크게 써넣어 쓸 일은 또 무엇인가 말이다.

내가 보기엔 ‘청풍명월의 고장 충북’ 하나라도 대대손손 잘 지켜 썼으면 좋겠다. 중국의 ‘길림성’이나 일본의 ‘야마나시현’이 자기들 지명 앞에 말도 안 되는 영어 단어 붙여 쓰는 걸 보았는가.

그래서 나는 충청북도에 간절히 바란다. 

아직도 주민 대부분이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마이동풍’식으로 듣고 있는 ‘바이오토피아’, ‘아이티 비티’, ‘아젠다’, ‘인프라’… 이런 수많은 외래어사용을 자제해주길 바란다.

마땅한 우리말을 찾아 얼마든지 풀어쓸 수 있는 말들을 이렇게 남발해도 되는 것인지 우리스스로에게 물어 볼일이다.

마침 오늘이 한글날이다.

지하에 계신 세종대왕께서 이일을 아신다면 얼마나 속상해 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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