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실직 미화원 사태 10개월째…

   
 
  ▲ 실직 미화원들이 옥천군청 현관에서 1개월간에 걸쳐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성낙경 전 지부장, 오대성 지부장.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옥천군청 마당에서 9개월이 넘도록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환경미화원들은 다가오는 추석이 두렵다.

모두가 풍성한 마음으로 맞이하는 한가위이겠지만 이들은 지난 겨울 설에 이어 또 다시 막막한 심정으로 천막에서 두 번째 명절을 보내야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장기간의 싸움에 지친 일부 미화원들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생계를 찾아 떠났고, 남아 있는 이들도 팍팍한 살림살이와 생존권을 걱정하며 농성장을 힘들게 지키고 있다.

졸지에 실업자가 돼 좀처럼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는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옥천 환경미화원들의 농성사태를 되짚어 본다.

▶고용거부에 이은 천막농성

옥천군은 올해부터 3년간 군내 생활쓰레기 수거업무를 대행할 위탁사업자를 지난해 말 새로이 선정했다.

위탁사업자는 공개입찰을 통해 1권역(옥천읍)에 옥천환경개발(대표 강형근)이, 2권역(읍을 제외한 8개 면지역)에는 금성환경(대표 권금자)이 선정돼 각각 22억4천200만원과 21억1천179만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문제는 옥천환경개발(대표 강형근)에서 발생했다.

새해 업무를 시작하면서 금성환경은 기존의 미화원들을 그대로 활용한 반면 옥천환경개발은 기존 위탁업체였던 관성환경의 미화원 22명을 고용하지 않고 별도의 직원들을 구해 쓰레기를 수거했다.

강형근 대표는 “위탁업체로 낙찰 받자마자 미화원 노조로부터 고발당하는 등 계속해 시달렸다”며 “자기들 맘대로 좌지우지하려는 직원들과 같이 일하고 싶은 생각이 있겠느냐”고 채용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강 대표는 또 “고용문제는 위탁계약 내용에 포함돼 있지 않다”며 “고용승계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화원들은 “지난 2000년 군 직영이었던 쓰레기 처리를 민간에 위탁하면서 우리들의 고용승계도 약속됐다”며 “옥천환경개발의 고용승계 거부는 부당해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화원들은 지난 1월2일부터 옥천군청 민원실 입구에 천막을 치고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긴 싸움에 들어갔다.

특히 옥천군의 잘못된 입찰로 인해 촉발된 사태이니 만큼 군이 나서서 실마리를 풀어 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오대성 미화원 대표(39·민주연합노조 옥천지부장)는 “2000년 당시 군은 50억원의 교부금을 받기 위해 신분상 변함이 없다는 감언이설로 미화원들을 민간업체에 넘겨 놓고 이제 와서 발을 빼려하고 있다”며 “군이 미화원 가족들의 생존권을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결방안 미궁, 막막한 생존권

미화원들은 천막농성과 함께 옥천환경개발과 군에 대화를 시도했지만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업체측은 아예 접촉을 외면하고 있고 군도 미화원들의 요구와는 거리가 먼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도 사태 초기에는 업체와 미화원 사이를 오가며 중재에 나섰지만 옥천환경개발이 임시로 일하던 직원들과 1월9일 전격 고용계약을 체결하면서 이 일은 쉽사리 해결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한때는 실직 미화원들을 관내 다른 업체에 취업시키는 방안도 모색됐으나 미화원들이 이를 거부, 사태는 교착상태에 빠져 더 이상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군은 “위탁업체는 공개입찰을 통해 선정된 계약관계로 고용승계를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난감하다”며 “현재로서는 별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발을 빼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주민들도 실직 미화원 사태를 함께 고민해보자며 나섰지만 시도뿐이었다.

옥천 20여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은 지난 3월 범군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중재안을 내기로 했으나 지금까지 나온 실적은 없다. 활동이 전무하면서 대책위가 있는지 조차 잊혀질 정도다.

긴 싸움에 행동을 함께 하던 미화원들은 하나, 둘 농성장을 떠났다. 생활고가 이유다. 처음 22명이던 미화원들은 이제 13명만 남았다. 그마져도 실제 농성에 참여하는 인원은 10명에 불과하다.

오 지부장은 “가장의 수입이 끊기면서 부인들이 생활전선에 나서 버텨왔으나 그 마저도 쉽지 않다”며 “각자의 살림형편을 뻔히 알고 있고 생활비라도 벌겠다며 떠나는데 끝까지 남아 싸우자고 붙잡을 수도 없다”고 한숨지었다.

그는 또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아들을 군대에 보낸 동료가 있는가 하면 전세 집에서 월세 방으로 내려앉은 가족도 있다”며 “주변에서 도와줘 근근히 생활하고 있지만 지난 9개월 동안 대부분의 동료들이 빚만 늘어났다”고 힘겨운 투쟁과정을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아주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미화원들은 군과 옥천환경개발을 상대로 노동부 산하 충북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내 지난 7월19일 부당해고라는 판결을 받았다.

노동위원회는 판결을 통해 옥천환경개발은 부당해고된 미화원을 즉시 복직시키고 해고기간 동안의 임금을 지급하라고 업체 측에 명령했다.

하지만 옥천환경개발은 이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며 곧바로 중앙노동위원회에 이의 신청을 냈다. 따라서 노동위원회의 결정은 법원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사실상 실행에 옮겨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사태 해결책은 없나

실직 미화원 사태는 지난 5·31 지방선거 과정에서도 커다란 이슈가 돼 주목을 받았다.

한용택 옥천군수도 후보자 시절 당선되면 이 문제를 1개월 안에 해결하겠다고 큰 소리 쳤다. 그러나 한 군수는 취임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군수의 말은 빨리 해결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며 “지방노동위원회에서도 미화원들의 구제신청에 대해 ‘군은 사용자로 볼 수 없다’고 각하했다”고 오히려 군의 책임이 없음을 강조했다.

사태해결을 위한 노동자-위탁사업자-자치단체 3자 상설협의기구를 설치하자는 미화원들의 제안에 대해서도 “미화원과 위탁업체의 소송절차가 남아있고 원직 복직을 협의하는 자리에 업체가 참석하겠느냐”며 공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군이 손을 놓고 주민들의 기억 속에서도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지만 실직 미화원 사태는 여전히 옥천지역의 최대 현안이다.

수시로 집회를 열고 삭발과 단식 등 극한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 온 미화원들 역시 지쳤지만 희망의 끈은 놓지 않고 있다.

이제는 뒷짐 지려는 군의 태도에 실망하면서도 대화채널은 꾸준히 열어놓되 해결능력이 없는 군보다는 행정자치부 등 중앙부처에 대책 마련을 촉구할 계획이다.

오 지부장은 “위탁업체가 공공업무를 수행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 만큼 군에 계약해지를 요청하겠다”며 “위탁업체 스스로 업무를 포기하도록 계약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계속 압박해 나가겠다고”고 밝혔다.

그는 또 “우리는 쓰레기를 치우는 일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다”며 “갈 곳이 없고 배운 것이 없으니 중간에 싸움을 그만두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투쟁의지를 불태웠다.

송윤섭 옥천희망연대 대표는 “군민을 위한 예산을 집행하는 자치단체가 미화원들이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음에도 제3자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본연의 자세를 망각하는 것”이라며 “실직 미화원들을 군에서 직접 고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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